바로가기 메뉴
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정읍사문화제



정읍사문화제 행사관련문의 전화번호

  • 대표 전화번호
  • 063-532-8880
  • 팩스번호
  • 063-532-8815

정읍사

HOME > 정읍사 이야기 > 정읍사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의 가요 『정읍사』
국문으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시조형식의 원형을 가진 노래

정읍사(井邑詞)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로,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속악의 가사로 불려졌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 노래의 제작경위가, 〈악학궤범〉 권5에 가사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정읍의 한 행상인이 행상하러 나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망부석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길을 바라보며 혹시 밤길에 해를 입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지어 부른 노래라고 한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나 '어긔야' 등의 여음이 있으며 형식은 3연 6행이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정읍사〉를 부르는 가운데 기생 8명이 나와 연행절차에 맞춰 춤을 추고 북을 치는데 마지막에 악사가 박을 치면 북을 멈추고 물러 나가고 음악이 그친다고 했다. 중종 때 음사라고 하여 궁중가악에서 제외되었으나 이후에도 계승되었다.

유일하게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는 백제의 노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속악(俗樂)의 가사로 불려졌다.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와 〈동국여지승람〉 권34 정읍현고약조(井邑縣古躍條)에 노래의 제작경위가 기록되어 있고,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조(時用鄕樂呈才圖儀條)에 가사와 연행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 정읍사 망부상
  • 정읍사
    〈정읍사〉, 작자 미상, 〈악학궤범〉에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고려사〉에 의하면 정읍의 한 행상인이 행상하러 나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아내가 망부석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길을 바라보며 혹시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지어 부른 노래라고 한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나 '어긔야' 등의 여음을 사용하고 있어 고려가요의 일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음을 뺀 본사설은 6행으로 2줄씩 합해보면 4토막 3줄 형식이어서 시조와 상통하기도 한다. 1·2행의 '달이여 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어주소서'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염려 때문에 달님을 향하여 보다 높이 뜨고 멀리 비추어 님의 발길을 보호해달라는 기원이다.

3·4행의 '온 저자를 다니고 계신가요. 진[泥] 데를 디딜까봐 두렵습니다'는 온 시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진 곳을 디딜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온 시장'[全져재]을 큰 시장인 전주시장으로, '진 데를 디딘다'는 대목은 이 노래가 후에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금지된 것으로 보아 '다른 여성에게 정을 준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5행은 '어느이다 노코시라'라고 읊었는데 해독상의 이견으로 말미암아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어느 누구와 놀고 계신가요'라고 하여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어느 곳에든지 놓고 계시라'라고 하여 피곤한 남편에 대한 염려로, '어느 것이나 다 놓고 오시라'라고 하여 속히 귀가할 것을 희망하는 것으로, 혹은 '어느 것이든지 놓여지게 하사이다'라고 하여 고뇌에서의 해방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6행은 '내가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라고 했는데, 남편이 해를 입거나 다른 여자에게 정을 두어 자기의 인생이 어두운 생활로 접어들까봐 두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노래는 백제의 민요로 구전되어오다가 속악의 가사로 편입되었고 고려시대에 와서는 궁중악인 무고정재(舞鼓呈才)의 가사로 창(唱)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서 〈처용무 處容舞〉·〈봉황음 鳳凰吟〉·〈삼진작 三眞勺〉과 함께 가창되었다. 〈악학궤범〉의 연행절차에 따르면 여러 기생이 〈정읍사〉를 부르는 가운데 8명의 여기(女妓)가 나와 절차에 맞춰 춤을 추고 북을 치는데 마지막에 악사(樂師)가 박을 치면 북을 멈추고 물러 나가고 음악이 그친다고 했다.

이 노래는 중종대(中宗代)에 이르러 음란한 노래라고 하여 궁중가악에서 제외되고 〈오관산 五冠山〉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성소복부고 惺所覆瓿藁〉·〈대악후보 大樂後譜〉·〈동국문헌비고 東國文獻備考〉 등의 문헌에 간단히 기록된 것을 통해 볼 때 이후에도 계속 연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백과사전 편찬위원회 | Daum 백과

정읍사(井邑詞) 가사

(前 腔)


(小 葉)

(後腔全)


(過 編)

(金善調)

(小 葉)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를 디디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 망부상

정읍사(井邑詞) 해설

주제
행상나간 남편의 안전을 기원
연대
백제로 추정
작자
어느 행상의 처
정읍사
조선 성종때인 1493년에 예조판서 성현 등이 편찬한 악학궤범에 설려 있음 - 정읍사 원문
악학궤범
음악사전. 61종의 악기서술.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유일한 음악지침
종류
3장 6구의 시가 / 제1장 - 달에 남편의 안녕을 기원 / 제2장 - 남편에 대한 야행침해 염려 / 제3장 - 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원